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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철의 법률톡톡] DNA만 나왔을 뿐, 범행은 증명되지 않았다

핀포인트뉴스 | 2026.09.17

형사재판에서 DNA 감정 등 법과학 증거의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성범죄 사건에서 DNA의 발견 자체가 곧바로 범죄의 성립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합의된 성관계에서도 상대방의 DNA는 검출될 수 있다. 따라서 DNA 존재만으로 강간죄의 구성요건인 폭행 또는 협박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며, 그것만으로 범죄의 성부를 판단할 수도 없다.

 

DNA의 증명력은 구체적인 쟁점에 따라 달라진다. 피고인은 성행위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피해자는 성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경우, DNA 검출은 누가 거짓말 하는지를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결국 DNA의 의미는 어떤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사용되는지, 그 사실이 범죄의 성립이나 진술의 신빙성 판단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이 사건(2026도4423) 에서도 DNA는 단순히 성관계의 존재를 뒷받침하는 자료가 아니라 진술의 신빙성과 결부되었다. 피고인은 자신의 차량 뒷좌석에서 피해자를 강간하였다는 공소사실을 부인하면서, 당시 피해자는 단추가 달린 청바지를 입고 있었고 스스로 바지를 벗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피해자는 고무 밴딩 슬랙스를 입고 있었으며 피고인이 이를 강제로 벗겼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피해자가 어떤 바지를 입고 있었는지는 강간의 실행행위뿐 아니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핵심적인 쟁점이었다.

 

제1심은 핵심 증거인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고 증거부족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검사가 항소한 뒤, 피해자가 당시 입었다고 주장하는 슬랙스에서 피고인의 DNA가 검출되었다는 감정서가 제출되었다. 원심은 바지 안쪽에서 피고인의 Y염색체 DNA형이 검출된 점 등을 근거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하고 유죄를 선고했다.(광주고등법원 2026. 2. 12.선고 2025노129 판결)

 

문제는 그 DNA 감정 결과를 사실인정의 출발점으로 삼기 전에 반드시 확인했어야 할 전제들이 충분히 심리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법과학 증거도 다른 증거와 마찬가지로 자유심증주의의 대상이지만, 자유 심증은 자의적인 판단을 의미하지 않는다. 법관이 과학적 공식이나 경험칙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가 되는 사실이 엄격하게 증명되어야 한다.

 

DNA 감정과 같은 과학적 증거가 유죄 판단에 상당한 구속력을 가지려면 감정인이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보유하고 공인된 검사기법을 사용했다는 사정만으로는 부족하다. 시료가 수집된 때부터 보관·운반·분석·제출되는 과정에서 동일하게 유지되었는지, 인위적인 조작이나 훼손·첨가가 없었는지, 각 단계의 인수·인계가 적절하게 기록되었는지가 확인되어야 한다. 이른바 관리 연속성, 즉 ‘Chain of Custody’는 법과학 증거를 재판에서 사용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이다. 즉 이 사슬이 끊어지면 증거로서의 가치가 없게 된다.

 

그런데 이 사건 피해자는 범행 발생 후 약 한 달이 지나 “바지 사진”을 제출했을 뿐, 바지 “실물”은 2년이 넘도록 본인이 보관하다가 재정신청이 인용된 이후에야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은 피해자가 2년이 넘도록 보관하던 바지를 증거물로 제출하면서도, 그 물건이 피해자가 입었던 바로 그 바지인지, 장기간 보관 과정에서 오염이나 훼손이 발생하지 않았는지, 제3자의 접촉이나 DNA의 2차적 전이가 있었는지 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더욱이 피해자가 제출한 바지 사진을 본 직장 동료들이 “사건 당시 피해자가 입었던 바지가 아닌 것 같다”고 진술한 경찰 수사보고서까지 존재했다. 그렇다면 수사기관은 바지 실물의 동일성과 사건 관련성을 먼저 확인하고, 보관 경위와 오염 가능성을 면밀히 조사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장기간 피해자가 보관했던 물건을 뒤늦게 증거로 제출하고, 그 위에서 DNA 감정 결과의 의미를 확대해석한 것은 법과학 증거에 요구되는 기본적인 검증을 소홀히 한 것이다.

 

DNA 결과 자체도 의문을 남겼다. 피고인의 DNA는 바지 안쪽 사타구니 솔기 한 곳에서만 검출된 반면, 불상의 남성 DNA는 바지 겉면 여러 곳에서 다수 검출되었고 피해자의 DNA와 혼합된 부분도 있었다. 특정인의 DNA가 검출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DNA가 범행 당시 그 사람에 의해 묻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DNA는 사람이나 물건을 매개로 2차적으로 전이될 수 있으며, 검출 시점과 부착 경위까지 알려주는 증거는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원심의 판단이다. 원심은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검증되지 않은 증거를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뒷받침하는 핵심적인 유죄 증거로 받아들였다. 증거물이 언제 어떻게 확보되고 보관되었는지, 그 물건이 사건 당시의 물건이라는 점이 확인되었는지, 검출된 DNA가 어떤 경위로 부착되었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조차 묻지 않은 것이다. 

 

대법원이 원심을 파기 환송하면서 지적한 핵심도 바로 여기에 있다.(대법원 2026. 5. 29.선고 2026도4423 판결) “피고인의 DNA가 검출되었다”는 사실과 “그 DNA가 범행 당시 피고인에 의해 묻었다”는 사실은 동일한 것이 아니다. 전자가 후자로 연결되려면 과학적 증거방법에 있어 그 전제와 수집·관리 과정이 엄격하게 검증되어야 한다. 

 

이는 수사·재판기관이라면 당연히 알고 지켜야 할 초석이다. 법과학 증거의 기본적 신뢰성 검증조차 거치지 않은 채 증거를 수집하고, 다시 그 증거를 유죄의 핵심 근거로 삼았다면, 이는 증거법의 기본 원칙을 소홀히 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출처 : 핀포인트뉴스(https://www.pinpoin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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