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민경철의 법률톡톡] 15년 전 성범죄, 공범의 유서는 증거가 될 수 있는가

핀포인트뉴스 | 2026.10.14

망인은 15년 전의 특수준강간 범행을 고백하는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피해자의 이름과 사건의 경위, 피해자가 만취하게 된 과정, 공범의 이름, 범행 장소와 죄명 등이 기재되어 있었다. 그러나 공범으로 적시된 피고인들은 범행을 부인하면서 당시 일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범행을 기재한 유서는 전문증거이다. 전문증거란 타인의 입이나 서면을 통해 간접적으로 법정에 제출되는 진술증거를 말한다. 원칙적으로 증거로 인정되지 않으며, 법이 정한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인정된다.

형사소송법 제314조에 의하면 진술자가 사망하여 법정에서 진술할 수 없는 경우, 예외적으로그 진술을 기재한 조서나 서류를 증거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작성되었음이 증명되어야 한다.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이하 특신상태)란 진술이나 서류의 작성에 허위 개입의 여지가 거의 없고, 그 신빙성이나 임의성을 담보할 구체적이고 외부적인 정황이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특히 제314조는 진술자에 대한 반대신문의 기회조차 없이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예외이므로, 매우 엄격하게 해석되어야 하며 반대신문을 통한 검증을 거치지 않더라도 신빙성을 충분히 담보할 수 있을 정도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고 본다.(2013도12652, 2016도17054)

1심은 이러한 특신 상태를 인정할 수 없다며 유서의 증거능력을 부정하였고,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항소심은 망인이 피고인들을 무고할 뚜렷한 동기가 없었고, 유서의 일부 내용이 피해자의 진술 및 당시 정황과 부합한다는 점을 근거로 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였고, 증명력까지 인정하여 피고인들에게 각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하였다. 하지만 결국 대법원은(2023도13406) 무죄 취지로 다시 파기 환송하였다.

증거능력과 증명력은 다르다. 증명력은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그 증거가 범죄사실을 얼마나 뒷받침하는지를 판단하는 문제이다. 반면 증거능력은 애초에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을 말한다. 이 사안은 증거능력 유무가 문제되었고, 증거능력의 판단기준은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 인정 여부였다.


망인이 피고인들을 무고할 뚜렷한 동기가 발견되지 않았고, 피고인들도 망인 및 피해자와 함께 술을 마신 사실은 인정하였다. 당시 피해자가 만취 후 귀가하여 성폭행을 의심하고 다음 날 산부인과 검진을 받았다는 사정 역시 유서의 내용과 일정 부분 부합하였다. 항소심은 유서가 피해자의 진술이나 객관적 정황과 일부 부합한다는 점을 들어 유서의 신빙성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러한 사정만으로 제314조의 특신상태가 증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유서의 내용이 사실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과, 반대신문이라는 검증 절차를 거치지 않고도 그 유서를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망인의 불안정한 심리상태, 유서 작성 동기와 경위의 불명확성, 사건 발생 후 14년 이상이 경과한 시점에 작성되었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기억의 오류나 왜곡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웠다. 더욱이 유서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고 피해자 등의 진술 및 객관적 정황과도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망인이 생존해 있었다면 법정에서 반대신문을 통해 이러한 불일치가 기억의 오류에 기인한 것인지, 과장이나 왜곡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실제 사실관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인지 반드시 검증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망인의 사망으로 그러한 검증은 불가능해졌다. 결국 유서의 신빙성이나 임의성을 담보할 만한 구체적이고 외부적인 정황이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이 사건 유서에 대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를 인정할 수 있는지, 그에 따라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설령 이 유서의 증거능력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피고인들에게 유죄를 선고할 정도의 증명력을 인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판례 입장이다. 

공소사실에 직접적으로 부합하는 유일한 증거는 사실상 유서뿐이므로 이를 근거로 피고인들의 죄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 내용 자체에 상당히 높은 수준의 신빙성과 구체성이 요구된다.

그러나 유서에는 각 피고인이 어떠한 행위를 하였는지, 범행이 어떠한 순서와 방식으로 이루어졌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다. 단지 ‘유사성행위’, ‘성관계’와 같은 추상적인 표현만으로는 공소사실에 기재된 구체적인 범행과 각 피고인의 행위를 그대로 인정하기는 어렵다.


더구나 피해자는 사건 직후 산부인과에서 검진을 받았으나 성폭행을 뒷받침할 만한 소견이 없다는 결과를 받았다. 15년 전의 사건이고,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핵심 증거가 유서 하나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유서에는 범행의 구체성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확인된 정황과 배치되는 부분까지 존재한다면, 이를 근거로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공소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이 같은 이유로 대법원은 무죄 취지로 파기하였는데, 결과적으로 타당해 보인다. 구체적 범행조차 특정되지 않은 유서만으로 형사처벌 한다는 것은 증거법 원칙에 부합하지 않으며, 유서 내용이 진실이 아닌 경우, 이를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출처 : 핀포인트뉴스(https://www.pinpointnews.co.kr) 

 

민경철 대표변호사에게 상담받기

 

Contact
전화 상담 카카오톡 상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