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고 사랑하면 돈을 써도 아깝지 않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형상도 없는 사랑과 애정은 종종 돈과 물질을 통해 표현된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변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도 변하고, 특히 남녀 관계는 언제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다.

남녀 간 법률분쟁에서 성범죄 고소만큼이나 빈번하게 등장하는 문제가 금전분쟁이다. 빌려준 돈이거나 반환하기로 약정한 돈이라면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지만 호의로 지급한 돈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스스로 좋아서 준 돈인데도 관계가 끝나면 이를 포기하지 못하고 법적 수단을 동원해 되찾으려는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올리는 수단은 형사고소다. 고소 자체에는 별도의 비용이 들지 않고, 일단 접수되면 수사기관이 사실관계를 조사해준다. 문제는 어떤 범죄가 성립된다는 것인가? 좋아서 준 돈임에도 돌려받기 위해 결국 빌려준 돈이라고 주장하거나, 상대방에게 속아서 지급했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약속을 어겼다거나 처음부터 갚을 생각이 없었다는 등의 주장을 덧붙여 사기죄로 고소하는 것이다. 

2023년 11월 이전이었다면 경찰이 민사소송으로 해결할 문제라며 고소장 접수를 거부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2023년 11월 1일부터 고소·고발을 받은 수사기관의 수리 의무가 명문화되었고 민사상 분쟁이라는 이유만으로 고소장 접수를 반려하기 어려워졌다. 

물론 고소장이 접수되었다고 범죄 혐의가 인정된다는 것이 아니다. 자발적으로 준 돈이라면 갚을 의무가 없고, 설령 빌린 돈이라고 하더라도 갚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사기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돈을 받을 당시의 기망행위와 편취의 고의 등 구성요건이 입증되어야 한다. 결국 혐의를 뒷받침할 사정이 없다면 불송치결정으로 종결될 수밖에 없다.

형사고소가 실패로 끝나면 남는 것은 민사소송이다. 지급명령을 신청하거나 대여금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송을 제기한다고 없는 채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대여금 반환을 청구하려면 돈을 빌려주고 갚기로 약정했다는 사실과 실제로 돈을 지급했다는 사실, 변제기가 도래했다는 사실 등을 입증해야 한다. 차용증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를 뒷받침할 증거가 전혀 없다면 대여금으로 인정받기는 어렵다. 


의뢰인은 한 여성으로부터 일방적인 구애를 받았다. 여성은 남성의 마음을 얻기 위해 상당한 금액을 지급하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몇 달 동안 돈을 지급했다. 두 사람은 교제했고 이후 금전 지급은 중단되었지만 상당 기간 동거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다가 끝이 났다. 여성은 남성에게 자신이 지급한 5,000여만 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남성이 반환 의무가 없다고 거절하자, 여성은 빌려준 돈을 갚지 않는다며 사기죄로 고소했다.

그러나 수사 결과는 불송치결정이었다. 금전 지급의 경위상 무상으로 제공한 돈이라는 점이 명백한 반면, 대여금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는 전무했기 때문이다. 여성은 다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의뢰인은 수사기관에서도 이미 무상의 증여로 판단한 만큼, 청구가 기각될 것으로 확신했다.

그런데 선고기일을 한 달가량 앞두고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법원에서 남성이 여성에게 1,000만 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화해권고결정을 내린 것이다. 의뢰인은 납득할 수 없는 권고를 단호히 거절했고, 당초 예상대로 여성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는 판결이 선고되었다.

그렇다면 판사는 왜 이런 권고를 했을까. 원고의 청구를 전부 기각하는 판결을 내리는 데 심리적인 부담을 느꼈던 것일까. 대여금이 아니라 무상증여라면 법적으로 반환을 명할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원고가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하는 결과를 내심 안타깝게 여겨, 법적 근거와는 별개로 일정 금액을 지급하도록 권고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남는다. 판사의 실제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법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반환의무를 당사자에게 부담시키는 방향의 권고가 과연 적절했는지는 생각해 볼 문제다.

사랑이 끝나면 감정도 달라지고, 과거의 선택을 후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를 만회하려고 무리수를 두는 순간 손실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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